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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프로그램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Gwangju Video: The Missing

  • 대한민국
  • 81min
  • X +
  • color
  • 다큐멘터리

1980년 5월 광주, 신군부 세력에 맞서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이어 벌어진 참혹한 학살. 많은 언론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에 잠입해 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비디오를 기록했다. 이 영상들은 일본과 독일, 그리고 미국으로 전파됐다. 소식을 접한 한국 교민들은 비디오를 재편집해 다시 한 번 진실을 알리기 위한 광주비디오 상영회를 개최했다. 해외에서 만들어진 광주비디오는 국내로 밀반입돼 대학가와 성당을 중심으로 몰래 상영됐다. 광주비디오는 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매개체가 되어 1987년 군부독재 타파를 외친 민주화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그런데 이 광주비디오들에서 유독 5월 21일 도청 앞 집단발포 당시 상황의 4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이 비디오를 찾아 나선다.

 5.21(목) 20:00 / 5.22.(금) 20:00 / 5.24.(일) 20:00 *3회 상영

 네이버TV에서 영화 바로보기(배너클릭)​ ​ 

Schedule

    프로그램 노트

    1980년 5·18 광주항쟁의 진상이 국내에서 광주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당시, 해외 거주 동포들이 외국 TV뉴스의 보도 내용과 현장의 영상 촬영분을 혼합하여 국내에 진실을 알리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이러한 혼합 영상물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으나 통칭 <광주비디오>라 하여 교회와 성당, 시민단체, 대학가를 통해 1980년대 전반에 걸쳐 한국 사회에 두루 유포되었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이러한 여러 가지 버전의 광주비디오들을 미국과 독일,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 만든 이들과 수십만 장의 비디오테이프로 이 영상들을 복제해서 국내에서 유포한 이들의 흔적을 찾는다. 그리고 영화는 이 비디오들이 그들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아쉽게도 여러 가지 버전의 광주비디오들과 그 비디오의 원본 영상들에는 5월 21일 계엄군이 광주 시민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기 시작한 4시간 남짓의 기록이 누락되어 있다. 따라서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에서는 광주비디오 제작과 복제, 유포의 기억들로 시작하여 이 사라진 4시간을 기록한 영상이 왜, 그리고 어떻게 부재한가를 집요하게 추적해 가며 마무리된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을 연출한 이조훈 감독은 한국 사회에 산적해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들을 주로 연출해왔다. 2018년 <서산개척단>(2018)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국토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충남 서산의 청소년들을 강제동원해 노역에 종사시켰던 사건을 파헤쳤고, 2014년작인 <블랙딜>에서는 한국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공공지의 민영화를 들여다보기 위해 훨씬 이전부터 공공분야의 민영화를 진행한 영국, 칠레, 아르헨티나,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의 예를 살펴보았다. 2006년작인 <146-73=스크린 쿼터+한미 FTA>에서는 영화인들의 스크린 쿼터 투쟁을 기록했다. 그 이전에도 많은 영화인들이 공동연출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2006)나 <독립영화인 국가보안법 철폐 프로젝트>(2004)에 참여하거나, 중단편 다큐멘터리인 <킬로미터 제로, 2003 칸쿤 WTO 투쟁>(2004),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2003)를 비롯해 반전 뮤직비디오인 <더 이상 더는>(2003)을 연출하기도 했다. 시네광주 1980의 개막작이기도 한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을 통해, 이조훈 감독이 조명하는, 오월 광주의 진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1980년대 국내의 상황과 그 진실을 영상으로 접하게 되어 충격과 분노, 부채감에 휩싸여 무엇이기라도 해야겠다 결심한 당시의 청춘들, 광주의 진상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가 될 사라진 4시간의 기록에 대해 엄정하게 숙고하게 되는 계기와 기회가 될 것이다.            

     

    이윤종, 시네광주 1980 프로그래머

    Director

    • 이조훈Johoon Lee

      1973년에 광주에서 태어나 80년에 광주항쟁의 편린을 기억으로 갖고 있다. 2000년부터 노동과 신자유주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독립영화 활동을 시작해 애니메이션부터 극영화,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업을 했다. 2005년부터는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도 병행하며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특집 다큐멘터리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Credit

    • 촬영 신임호
    • 편집 김형남

    Mentor

    • 김태영Taeyeong Kim

      1987년 한국의 국가폭력과 당대 의문사를 고발하는 영화 <칸트 씨의 발표회>로 데뷔했다. <황무지>와 <딜쿠샤>를 발표하며 시네아스트의 면모를 보였다. 이후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을 연출했다.